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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국시대 치소 ‘토성’ 발견 (2)
기획 문화기획 남한 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남한지역 고구려 답사] 원삼국시대 치소 ‘토성’ 발견 (2)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원삼국시대 토성 답사
글마루와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취재반은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김상수 개발사업팀장과 윤현성 주무관의 안내를 받아 속칭 동해시에서 장안성 혹은 고녕성으로 불리는 토성 일대 유적을 답사했다. 

강릉-동해 간 고속도로를 타고 남하하여 망상을 지나 바로 우측인 서쪽으로 마상천을 따라 약 2㎞쯤 들어가면 동해공업고등학교가 있다. 산성은 이곳에서 하천 건너편인 북쪽 낮은 구릉지(70)에 위치한다. 얼핏 보면 토성이 있는지도 모를 지경의 낮은 야산이다. 

이 산성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는 나오지 않다가 <조선 보물 고적조사자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전국유적목록>에는 “묵호읍 심곡리, 토성”이라 하였으며 <문화유적총서>에는 “낮은 야산의 능선을 따라 둥글게 쌓은 1㎞ 정도의 토·석혼축성이다. 장안성 또는 안토성이라 부르는데 진장을 두었다고 전하고, 혹은 대진리 봉화대를 지키던 군병이 주둔했다고 전해진다. 와편이 산재되어 있고 성의 윤곽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조선 영조 때 강릉부사 맹지대가 쓴 <임영지(臨瀛誌)>에는 “고현산성, 옛 명주군 묵호읍 심곡리 서편 산에 있는데 지금은 옛 자취만 보인다. 성의 둘레는 1㎞ 정도로 축성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구려 때가 아닌가 한다. 토성은 장안성 또는 안상성이라 하는데 축성을 두었다고 한다”고 하였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이 성은 크기가 다양한 사암으로 구축된 순수한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의 높이 1~5 , 상부폭 2~3, 둘레는 약 600~700이다. 

그런데 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의 목측 추정 길이는 1㎞ 이상이 되는 대단위 토성지였다. 이 성의 토축 방식은 천안 성환 사산성을 많이 닮고 있다. 원삼국시대 토성지의 양태를 지니고 있다. 석축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자연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다져 쌓은 판축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뜨거운 날씨로 답사반은 토성의 일부밖에 조사하지 못했다. 3분의 1도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원삼국시대 성읍 국가 치소인 실직국고지로 추정해도 남음이 있는 큰 규모였다. 

보고서를 보면 동북 벽은 붕괴되었으나 서남벽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북문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높이 3, 둘레 140㎝ 정도의 석제문루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성 안에는 우물자리 1개소가 있고 평탄한 부분은 논, 경사지는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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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호로고루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와편 ⓒ천지일보 20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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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토성에서 찾아진 와편 ⓒ천지일보 2022.12.09

무수한 고구려 와편
성안에서는 처음 잡초가 우거져 와편이나 토기의 잔해를 수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남쪽 절개지를 조사하는 순간 답사반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비로 인해 황토빛 언덕에 노출되어 있는 와편 무더기들이었다. 

민묘를 쓰기 위해 일부 삭토한 남쪽의 토루에서 집단적으로 찾아진 와편은 격자문, 사격자문, 승석문 등 전형적인 고구려 와편이었다. 임진강 연천 호로고루성에서 찾아진 고구려계 와편과 너무나 흡사했다. 일부는 왕도 국내성 유적과 만주지역인 고구려성 오녀산성, 환도산성 등지에서 찾아진 평와와 같은 문양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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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토성에서 찾아진 上(상)자(붉은 원) 와편 ⓒ천지일보 2022.12.09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上(상)’자명 평와(平瓦)였다. 네모진 정격자 문양의 가장자리에 구곽을 만들고 정연한 정서 예서체로 찍힌 ‘上’자는 고구려 상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토성을 점령한 고구려 집단은 상부의 군사들로 보여지는 것이다. 장수왕의 명을 받은 상부 군사들이 말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실지국 고성을 탈환한 것일까.

상부는 고구려 최고 귀족 계급이었다. 고구려 온달전에 평원왕이 평강공주를 온달에게 시집보내지 않고 상부고씨(上部高氏)에게 시집보내려 한 기사를 통해서도 그 위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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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만)'자(붉은 원)가 찍힌 와편과 연화문(붉은 원) 와편이 찾아졌다. ⓒ천지일보 2022.12.09

와편 가운데는 전형적인 사격자문 평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강원도 일대에서 다수 찾아지는 신라계가 아니다. 또 와편 가운데는 ‘卍(만)’자가 찍힌 흑색의 와편도 찾아졌다. ‘卍’자는 태조의 날카로운 연화문이 찍힌 아랫부분에 큰 구곽을 마련하여 찍었다. 신라, 고려 시대 기와에서는 볼 수 없는 굵은 모양이다. 이는 성 안에 가람의 신축이 이뤄졌던 것임을 알려준다.

장수왕이 남쪽 지경을 공략한 시기는 고구려 불교가 가장 번성을 이룬 때다. 이보다 앞선 시기 광개토대왕은 평양에 아홉 개의 사찰을 창건하기도 했다. 장수왕은 북위와 가장 활발한 수교를 통해 많은 불교유물의 수입을 꾀했다. 

울진에 남아있는 안일왕 설화
실직국 마지막 왕 안일왕(安逸王)은 나라가 망하자 울진으로 피난했다고 한다. 울진 지역에서는 안일왕보다 ‘에밀왕’으로 불리며 설화가 많이 남아있다.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속칭 안일왕산성(安逸王山城)은 안일왕이 피난 와서 축조했다는 얘기다. 이 마을 70∼80대 노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어릴 적에 울음보를 터뜨리면 어른들이 “예(濊) 나온다, 그쳐라.” “예 쳐온다, 그쳐라.’ 하고 달랬다고 한다. 예국이 쳐들어오니까 울음을 그치라는 뜻이다. 

안일왕 산성 주변의 통고산(通高山)은 안일왕이 이 산을 넘으면서 하도 재가 높아 통곡했다는 설화가 있다. 삿갓봉의 복두괘현(僕頭掛縣, 박달재라고도 함)에도 망국의 설화가 새겨져 있다. 안일왕이 신하와 옷을 바꿔입고 도망가다가 이곳에서 복두를 벗어 놓고 샘물을 마시던 중 적군이 가까이 추격하자 미처 복두를 쓰지 못하고 도망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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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원삼국시대의 완연한 토루 ⓒ천지일보 2022.12.09

토성지 삼척 읍성
실직국의 고지로 추정되는 유적은 삼척 읍성도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읍성의 고지는 크기도 작고 고대 실직국의 유지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 다만 발굴을 통해 신라시대 수혈 주거지, 고려시대 토성, 조선 전기의 석성 그리고 삼척도호부의 관아 시설과 고려시대 관아였던 것으로 보이는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이 읍성은 고려사절요에 정종 2(947)년에 삼척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고려시대에 읍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 <세종실록지리지> 삼척도호부 조에 “삼척읍성은 토성(土城)이고 둘레가 540보이며, 죽서루(竹西樓)가 읍성 가운데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척읍성은 삼면이 석성(石城)이고 둘레가 2054척, 높이가 4척이며 서편 성벽 431척은 절벽을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척시 원덕읍 옥원리에 위치한 옥원성을 실직국고지로 보기도 하는데 규모가 역시 작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따르면 “옥원성은 옥원역 부근에 있으며 토성으로 길이 507척(152), 높이 8척(2.4)이며 군창(軍倉)이 있다.”고 했다.

17세기 조선 현종 때 허목(許穆)이 편찬한 <척주지(陟州誌)>에는 “조선 태조 2(1393)년에 둘레 523척(158)의 토성을 쌓았으며, 성 밖에는 옥원역이 있고 서쪽 5리에 금정암(金井庵)이 있었지만 폐지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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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망상 해수욕장 전경(제공: 동해시청) ⓒ천지일보 2022.12.09

망상 해수욕장 개발 계획안의 유적
동해시 망상 제2·3지구 관광 개발사업은 천혜의 해양자원을 극대화시키는 대단위 프로젝트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한 개발계획 변경(안)이 확정되면 사업시행자로부터 9월까지 실시계획(안)에 대한 승인 신청을 받아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망상 1·2·3지구는 약 3조 4900억 원의 민간사업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남북한 통일시대에도 대비, 강원도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개발계획 변경 신청안을 보면 제2지구는 0.22㎢ 면적에 9641억 원을 투자, 지하 6층~지상 49층 규모의 아트뮤지엄, 호텔, 콘도 등을 조성해 ‘아트뮤지엄 콤플렉스’로 개발하고 제3지구는 0.32㎢ 면적에 1조 8608억 원을 들여 지하 6층~지상 65층 규모의 호텔, 콘도, 커뮤니티센터, 쇼핑몰 등 글로벌 리조트 콤플렉스 개발 내용을 담고 있다. 동양의 하와이 같은 청사진이다. 

이 같은 개발계획에 장안성 실직국 추정 유적은 계획안에 포함되어 있다. 개발되기 전에 철저히 발굴조사하여 고대 유적의 실체를 복원하고 사적공원으로 정비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고구려 유물이 많이 출토될 것을 대비해 박물관 건립도 생각해 볼 일이다. 

동해경자청 실무진들도 고대 유적으로 확인되면 또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어 개발사업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구나 발굴조사를 통해 2000년 전 잃어버린 왕국 실직국을 찾는다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왕국 실직국은 고구려 역사와 더불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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