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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국시대 치소 ‘토성’ 발견 (1)
기획 문화기획 남한 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남한지역 고구려 답사] 원삼국시대 치소 ‘토성’ 발견 (1)

장수왕 말갈군 시켜 점령… 30년 고구려 지배
‘上’자명 ‘卍’자 등 와편 다수 찾아 고구려 유적 확인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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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정안성 혹은 고녕성으로 불리는 동해시 심곡동에 위치한 토성으로 원삼국시대 축조토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2.09

프롤로그 
2000년 전 지금의 동해, 삼척시에 고대국가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실직국(悉直國). 또는 실직곡국(悉直谷國)이라고 불렸다. 원삼국시대 동해변을 거점으로 성읍국가로 성장한 고대왕국이었다. 실질국의 지배자는 왕이란 칭호를 받았으며 해상을 바탕으로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것 같다. <삼국사기>에 기록될 정도니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실직국은 신라초기 영토분쟁으로 혼란을 겪다 틈새를 노린 신흥국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잃어버린 왕국으로 그 역사가 묻혀있다. 

‘실직’이란 무슨 뜻일까. 북한 국어학자 류렬은 실직(悉直)과 사직(史直)을 ‘시(shi)디’ ‘시(shi)더’로 해석했다. 삼척의 삼(三)은 ‘시’ ‘서’에 대한 음운이화(같거나 비슷한 소리들이 다른 소리로 바뀌는 것)로 ‘셋’의 형태라고 봤다. 실직국의 고지가 옛날 삼척에 있다는 것을 바로 이 해석으로 판단한 것이다. 

학자들은 실직국 원주민들이 강릉지역 일대에 웅거했던 맥국(貊國) 계열로 해석하기도 한다. ‘맥국’은 과연 어떤 민족을 가리키는 것일까. 맥(貊)은 통칭 예맥족으로 만주 유역에서 집단 이주한 고구려계라는 것이다. 

강원도 수부 춘천에 웅거했던 맥국 집단을 ‘말갈’의 일단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에서 말갈은 고구려의 별종(別種) 세력으로 기록된다. 고구려와는 같은 언어로 소통했으며 주몽에 의해 압록강을 다시 확보한 고구려에 흡수되어 살았다.

북쪽에서 해안을 따라 남하한 맥족의 일부가 삼척, 동해시 일원에 성을 구축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한 춘천 맥국 집단과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실직국을 설명한 백과사전의 기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동해안 유적을 살펴보면 실직국은 해상왕국으로서 북의 옥저, 남의 진한, 변한을 연결하며 중계무역으로 번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강릉 교황리 유적에서 철 생산과 관련 있는 유구가 출토되고, 동해 망상동과 송정동 유적에서 송풍 파편이 발견됐다. 이는 실직국이 금관국의 철기를 수입해 자체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북쪽의 예국에 수출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실직국의 수출품은 어물과 소금, 임산물 등이 아니었을까. 강릉 유적지에서는 중국 한대(漢代)의 오수전이 발견되는데 이는 동해안 해로가 오래전부터 운영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렇다면 그들의 치소는 어디이며 어떤 문화를 지니며 살았던 것일까. 그리고 고구려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고구려 장수왕은 왜 실직국성을 회복하기 1만 명의 말갈군대를 동원해 실지(失地)를 회복한 것일까.

동해안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 동해시 망상 해수욕장에서 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과 글마루 취재반은 잃어버린 왕국 실직국 찾기에 나섰다. 뜨거운 여름철 삼척, 동해시 인근에 고대 성지와 유적이 많은 이 지역에서 실직국의 고지를 찾는 일은 정말 힘든 도전이었다. 

삼척시와 동해시의 신경전도 다른 비역과 달리 팽팽하다. 정확히 실직국의 고지를 찾는 작업은 삼척시와 동해시 일대의 고대 성지조사를 다 마친 후 결론을 내야 할 듯하다. 

남진 장수왕이 점령한 ‘실직국’ 
<삼국사기> 권 제18 장수왕 56(468)년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이때는 장수왕이 백제 왕도 위례성을 공략하기 7년 전의 일이다. 장수왕은 실직국성의 탈환을 먼저 감행한 것이다. 그것도 말갈 대군을 시켜 공취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2세기 초반부터 강릉 일대 동해안 지역은 국경분쟁지역으로 떠오른다. 102년 신라 파사이사금 23년조에 실질곡국과 음집벌국(지금의 경상북도 안강 지역 추정) 간에 국경분쟁이 벌어진다. 신라왕은 판단을 하지 못하고 금관국 수로왕에게 판단을 부탁했다. 이때 수로왕은 음집벌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작은 국가들이 영토분쟁으로 신경전을 벌일 때 신라의 욕심은 두 나라를 정벌하는 것이었다. 결국 음집벌국와 실직국은 신라에 의해 병합된다. 104년 파시이사금 25년조에 실직국이 신라에 망하는 기록이 있다. 

실직국의 역사가 끊어진 지 364년 만에 장수왕은 말갈 대군을 동원해 실직국성을 되찾은 것이다. 신라의 북진을 제어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같은 민족인 맥국의 고지를 다시 찾으려는 의도가 있을 것으로 상정된다. 

말갈은 실직국의 탈환이 최대 숙원이었던 것 같다. <삼국사기> 내물이사금 40(395)년조에 “가을 8월,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했다. 병사를 보내 실직(悉直)의 벌판에서 그들을 크게 쳐부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말갈이 실직 고지의 탈환이 숙원이었음을 알려준다. 

고구려가 실직국의 고지를 탈환한 후 30여 년은 평화가 왔다. 그런데 6세기 초반 지증왕의 동해 공략이 시작될 때 실직국성은 다시 신라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6(505)년 봄 2월, 임금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했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다.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기록을 보면 이사부로 하여금 실직주를 관장토록 했으며, 이 성을 신라 영동지배 공략의 거점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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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송정동에서 출토된 원삼국시대 철기유물과 곡옥 ⓒ천지일보 2022.12.09

실직국성 고지는 어디인가
실직국성 고지를 두고 삼척시와 동해시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아직은 결정적인 단서가 될 만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해시 망상해수욕장 인근 송정동에서 대단위 초기 철기 유적이 발견된 이후 동해시 쪽이 유력한 추정지로 부각되고 있다. 송정동 유적에 대한 보고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특히 규모 면에서 집단 취락지의 범위를 넘어 역사서에 나오는 고대 동해·삼척의 실직국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어서 2005년 강원도 기념물 84호로 지정됐다. 

이와 관련해 동해시는 11월까지 4개월 동안 2억 8000여 만 원의 예산을 들여 송정1지구 주거환경개선 사업부지인 송정동 374-1번지 외 22필지 2430㎡에 대한 문화재조사 용역을 실시한다. 

송정동 유적지는 1996년 동해항만확장 공사와 1999∼2000년 송정중심도로건설공사로 인해 발굴조사 돼 대규모 철기시대 유적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해항만 공사 구간인 송정동 324-1번지 일대에서는 4기의 주거지가 조사돼 은제장신구와 곱은 옥, 목걸이, 한식토기, 이형토기, 경질 민무늬토기, 두드림 무늬토기, 철기류 등이 출토됐다. 동해시 송정동 중심도로공사 구간인 송정동 1665번지 일대에서는 대형주거지와 소형주거지 49기, 소형유구 12기가 복합적으로 확인됐으며 유물로는 유리구슬, 쇠화살촉, 쇠삽날, 한식토기, 경질민무늬토기, 두드림무늬토기 등이 출토됐다.

송정동 유적지는 현재까지 조사된 결과 동해·삼척지역 최대 규모의 철기시대 유적으로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생활하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유적이 실직국에 해당된다는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위치상으로 실직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당시 철기시대에서 고대국가로 이어지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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