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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
오피니언 칼럼

[어제보다 행복하기] 인간다움

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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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후마니타스(인간다움)’라는 개념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개념을 처음 이야기했던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변호사로 활동했던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요즘 인문학을 할 때에는 비판적 성찰이나 힐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키케로가 쓴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한 변론’이라는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탁월함을 습득하고 훈련하기 위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공부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이런 공부는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역경 속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공부를 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변질되고, 더 이상 인간다워지기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은 돈과 지위 등을 위한 공부가 됐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한다.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노예라고 한다. 완벽하게 주인으로 살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틈틈이 주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이나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돈이나 권력을 이겨야 한다. 

이긴다는 것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강신주라는 인문학 작가이자 강연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때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단 한 번도 친구한테 아낌없이 돈을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친구 중에 좀 부유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 가난한 친구에게 술을 사주고 택시비까지 탈탈 털어주고는 자기는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할 수 있던 친구가 늘 부러웠지만 자신은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오천원짜리나 만원짜리를 천원짜리로 바꿔서 호주머니 곳곳에 나눠서 꽂아뒀다고 한다. 친구에게 택시비를 건네받고 뒷주머니에 남아 있는 2000원을 만지면서 속으로 ‘신주야, 너는 친구 못 사귀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인간다움’이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맞고 틀리고를 말할 수 없다. 강신주 작가의 고백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아낌없이 친구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친구를 부러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간답다 할 수 있다. 더구나 그렇게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살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필자는 인간다움은 자신을 사랑하고 그것을 확장시켜서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하듯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진정으로 가졌을 때가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길에서 처음으로 돈을 주웠는데 어린아이에게는 꽤 큰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서에 갖다 줬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서 돌려주라고. 경찰도 난감해했다. 돈에 이름이 씌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냥 쓰라고 했지만 꿋꿋하게 놓고 나왔다. 언젠가는 다이어트하면서 아낀 돈으로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식사하시라고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스스로 인간다운 일을 했다고 생각할 때 뿌듯하고 행복하다. 나름대로의 인간다움을 키워나갈 때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서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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