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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왜곡(思想歪曲)
오피니언 칼럼

[고전 속 정치이야기] 사상왜곡(思想歪曲)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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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묵자는 자신의 시대에 홀로 거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나 진한시대 이후 이상하게도 사상사의 흐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약 2천년 동안 감쪽같이 사라졌던 묵가의 기록은 도가의 전적에 섞여 있었다. 묵가는 황당하게도 세상을 벗어나 소요하는 신선들과 어울렸다. 묵가의 단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항우가 함양에 불을 질렀을 때, 유가에 반대하다가 한초에 파출됐다는 등의 주장이 있다. 그러나 장자의 말처럼 보통 사람이 지키기 어려운 것을 주장하다가 대중을 흡인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묵가의 조직은 너무 엄격하고 비밀스러워서 추종자의 수가 늘어나자 오히려 공격적으로 변했다. 거자(鉅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조직의 특성 때문에 민간의 무장집단과 흡사해 제왕들에게 소멸됐을 것이다. 백과전서와 비슷한 묵가의 사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학파의 사상과 융합되면서 제자백가로 흡수 또는 해체됐다.

이러한 견해는 모두 일리가 있다. 묵가의 사상이 중단된 원인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전통사상이 계승되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묵가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세대가 이어지면서 형성된 윤리와 도덕에서 묵가는 일정한 모델이 됐다. 중의(重義), 상현(尙賢), 민본(民本), 비공(非攻), 비명(非命), 역행(力行), 강본(强本), 절용(節用)은 유가에 영향을 미쳤고, 법의(法儀), 중공(重功), 상현(尙賢), 상동(尙同), 비명(非命), 역행(力行) 등은 법가에 영향을 미쳤으며, 겸애(兼愛), 천지(天志), 명귀(明鬼), 균재(均財) 등은 도가에 영향을 미쳤고, 구수(救守), 비어(備禦) 등은 병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 자체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어졌다. 청대 중기에 고증학이 유행하면서 묵자는 평민출신 성인으로 재등장했다.

근대에 이르러 민족적 모순이 격화되고, 서구사상이 중국으로 유입되자 묵자 사상 자체에 대한 지식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묵자 사상은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서구사상을 극복하려던 학자들은 묵자사상이 서구사상보다 앞섰다는 점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추백기(鄒伯奇)는 ‘서학의 근원은 묵자’라고 주장했으며, 왕개운(王闓運)은 ‘묵자교주서(墨子校注序)’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경설’ 가운데 광학과 중력에 관한 내용은 모두 서양의 책에서 그대로 옮겼으며, 우두머리를 거자(鉅子)라고 한 것은 구자(矩子) 또는 십자가로 변했다.… 10세대 이후에 중국의 바깥에서 출현한 석가나 예수가 모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성인으로 받들게 된 것도 본래는 묵가에서 유래된 것이다.… 동치(同治) 이후에 서학이 성행하자 사람들은 그것이 묵자가 남긴 단편적인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묵자의 역학, 광학, 종교, 예술 등에 관한 사상이 서학의 비조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한 사람이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여서창(黎庶昌)은 ‘상기루문집(湘綺樓文集) 제3권’에서 서구 각국에서 성행한 기독교에서는 존천, 명귀, 겸애, 상동을 자기들만의 고유한 교리인 것처럼 떠들었지만, 사실은 ‘묵자’를 근원으로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유신을 주도한 황준헌(黃遵憲)은 ‘일본국지 학술지’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서양 학문의 원류는 모두 묵자이다. 자주정신은 묵자의 상동이고,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겸애이며, 이는 묵자의 존천명귀에서 나왔다. 기계를 만들어 공수(攻守)가 가능하게 된 것은 묵자가 공격에 대비한 것에서 나왔으며, 연을 깎아서 하늘로 날린 것은 그 단서가 된다. 격치(格致)의 학문은 ‘묵경’ 상하편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중국 근대화를 추구했던 사람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서양의 학문이 모두 묵자로부터 비롯됐다는 이들의 주장은 편협된 생각이자, 상식에도 어긋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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