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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문화재’ 고국 돌아온 길 달랐다
문화 문화재

‘환수문화재’ 고국 돌아온 길 달랐다

반출된 문화재 ‘21만 4208점’
유럽 등 25개 나라에 흩어져
부당 유출·구입·기증 등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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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보병들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면피갑’ ⓒ천지일보 2022.07.06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나라 밖을 떠돌다 국내로 돌아온 환수문화재. 그 시련의 세월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으랴. 100여년의 근현대사는 그야말로 혼란과 변화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들은 언제고 다시 돌아오는 날을 꿈꿨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환수된 40여점의 문화재는 대중에게 공개돼 역사적 가치를 전하고 있다.

◆해외 반출 경로 다양해 

나라 밖을 떠돌다 국내로 돌아온 40여점의 문화재는 지난 7일 대중에게 공개됐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에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열린 전시는 9월 25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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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미국에서 환수한 ‘열성어필’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07.11

전시에서는 지난해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 매화, 새, 대나무 상자’, 올해 3월 미국에서 환수한 ‘열성어필’과 ‘백자동채통형병’이 처음 공개됐다. ‘독서당계회도(2022년 환수, 미국)’ ‘면피갑(2018년 환수, 독일)’ ‘문인석(2019년 환수, 독일)’ 등 6건의 유물은 언론에 한차례 공개된 적이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표한 국외문화재 현황(2022년 1월 1일 기준)에 따르면, 해외로 반출된 한국문화재는 21만 4208점에 이른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 25개 나라에 흩어져 있다. 소장 정보가 온전히 공개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된 이유는 다양하다. 구한말 서구열강의 침탈,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으면서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이유로 해외에 유출됐다. 그런가 하면 합법적으로 구입, 기증, 외교 선물, 수출 교역 등으로 해외로 나간 문화재도 많다.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개개인의 외국인에게도 수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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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기증한 덕혜옹주 복식 유품 중 두 점. ⓒ천지일보 2022.07.11

◆불법·합법적, 대응법 달라져  

국외 문화재의 성격과 반출경로는 복잡하다. 이로 인해 국내에 들여오는 방법도 다르다. 전문가들은 불법적인 유출인지, 합법적인 유출인지가 문화재 관리와 대응 결정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불법성을 확인한 문화재는 관계당국과 공조해 매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다. 국새 ‘황제지보’ ‘유서지보’ ‘준명지보’는 한국전쟁 때 도난당한 국새다. 미국과의 수사공조를 통해 불법 반출이 확인됐고 2014년 한미정상회담 때 반환됐다. ‘호조태환권’의 인쇄 원판도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수사공조로 환수됐다. 호조태환권은 비록 유통되지 못했지만 조선이 만든 최초의 근대적 화폐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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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수사공조로 환수된 ‘호조태환권’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07.11

소장자·소장 기관의 윤리적 판단과 선의를 바탕으로 기증받기도 한다. 1740년 어보인 ‘효종 추상존호 금보’는 1990년대 한 경매에서 거래된 후, 도난 문화재라는 사실을 인지한 재미교포 소장자가 2019년 대군주보와 함께 국내에 기증하면서 반환됐다. 조선시대 사대부묘에 세워졌던 ‘문인석’과 조선 후기 보병이 입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면피갑’도 소장자의 자발적인 기증 방식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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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동채통형병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07.11

불법·부당성이 확인된 유물이 아니어도 소장 가치가 큰 유물은 환수된다. 가장 최근인 지난 3월 환수한 ‘백자동채통형병’은 미국인 수집가가 반출한 유물이다. 이는 우리 문화재 국외 반출 경위의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녔다. 유물은 미국 경매에 출품된 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구입했다.

◆소유권 이전 어렵다면 ‘영구대여’

완전한 소유권 이전이 어렵다면 영구대여 방식을 사용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을 담은 화첩이 그렇다. 이는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초대 총아빠스(대수도원장)를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6~1956)가 1911년, 1925년 선교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수집했다. 1976년 유준영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유학 시절 ‘겸재정선화첩’을 처음 발견했고 국내에 알렸다. 이후 이 화첩은 영구대여 방식으로 왜관수도원에 반환했다. 카니시우스 퀴겔겐 신부가 1918년 쓴 근대 서양 양봉기술 교육 교재인 ‘양봉요지’도 영구대여 방식으로 반환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화재가 국내로 환수되는 것은 아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신재근 연구사는 “가치성을 고려해 꼭 필요한 문화재는 국내로 들어온다. 그 외의 문화재는 현지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설명했다. 국외문화재가 우리만의 것이 아닌 현지인도 함께 가꾸고 보살피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여전히 나라 밖 문화재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하거나 관리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의 문화재가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 역사적 빛을 발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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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수사공조 후 2014년 한미정상회담 때 반환된 국새 ‘황제지보’ ⓒ천지일보 2022.07.11ⓒ천지일보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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