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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낮아지고 또 낮아졌던’ 87년의 생애
종교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낮아지고 또 낮아졌던’ 87년의 생애

김수환 추기경. (출처: 한국조폐공사 쇼핑몰 캡쳐) ⓒ천지일보 2019.2.27
김수환 추기경. (출처: 한국조폐공사 쇼핑몰 캡쳐) ⓒ천지일보DB

한평생 약자와 동행 강조하고

민주화 등 사회정의에도 기여

서울 명동성당 등 기념미사 열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천 원짜리 몇 장 있나?”

1980년대 어느 주일 오후, 당시 서울대교구장 비서였던 허근 신부의 숙소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방문을 열었더니 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서 있었다.

“택시를 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문을 연 허근 신부에게 김 추기경이 이같이 말했다. 김 추기경은 허 신부에게 천원짜리 몇 장을 건네받고 외출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가 대신학교 4학년 시절, 친형인 허근 신부 방에 놀러가서 목격한 모습이다. 허 신부는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분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전·현직 언론인과 사제, 수도자들이 고(故)김수환 추기경과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나 추억을 담은 책 ‘우리 곁에 왔던 성자’에 실린 에피소드 중 일부다.

허영엽 신부를 비롯한 이 책에 나오는 필자들은 김 추기경을 사랑 그 자체이자 우리 곁에 왔다 간 시대의 성자로 기억한다. 또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누구보다 소통을 위해 노력했고 소탈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던 유쾌한 성직자로 회고한다.

6일은 김 추기경 탄생 100년이 되는 날이다. 김 추기경은 한국 종교에서 몇 안 되는 큰 어른이자 정신적 지도자로 꼽히며 큰 존경을 받아왔다. 1922년 봄 대구 남산동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 추기경은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68년 서울대교구장(대주교)에 이어 이듬해 47세의 나이에 대한민국 최초의 추기경이 됐다.

“주여,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당신과 함께 영원을 향해 걷고 싶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자작시 ‘나의 기도’ 1979년)

종교인으로서 김수환은 추기경이라는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한평생 하느님(하나님)과의 만남을 갈구한 열정적 신앙인이었다. 그는 낮아지려 힘썼고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하며 겸손하려 애썼다.

2001년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돌아보면 하느님께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제가 사제가 될 때 택한 성경 구절이 시편 51편의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였는데, 지금 심정이 똑같다”고 말했다.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집무를 중단하고 피정(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는 일)을 떠났는데 하느님을 잘 만날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85년 11월 13~18일 한국 주교단 교황청 정기방문(로마)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사진. (사진제공: 서울대교구)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85년 11월 13~18일 한국 주교단 교황청 정기방문(로마)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사진. (사진제공: 서울대교구)

그가 단순히 종교지도자를 넘어 온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이 된 것은 ‘천주교’라는 종교 안에서 종교가 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으며 또한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를 ‘형제’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하고 나누는데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생전 이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추기경은 교회 안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정의에도 앞장서는 행보를 보였다. 특히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던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를 위해 함께 투쟁을 벌이거나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해 성명을 내는 등 용기 있게 맞섰던 투사였다.

김 추기경은 2009년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말을 남기고 향년 87세의 일기로 선종했다.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 장기기증을 약속했던 그는 선종 직후 두 눈의 각막을 기증했다.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았던 김 추기경의 삶은 종교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장례 기간 당시 매일 10만여명의 조문객이 명동성당으로 몰려들었고, 외신도 “가톨릭 국가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평가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에서는 5일 정오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했다.

정 대주교는 강론에서 “김 추기경님은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독재 체제에 있을 때 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해주시고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주셨다”며 “가톨릭 신앙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 추기경님의 탄생 100주년이자 선종하신 지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추모와 존경의 여운이 계속 이어지며 추기경님의 시복을 위한 신자들의 염원도 교회 안에 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사 후에는 김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시비(‘詩碑)가 명동성당 들머리에 세워졌다. 시비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작품 명동성당이 우리말과 영어로 새겨졌다. 시비 하단 하단부의 검은 돌은 초창기 교회의 암흑기에 순교자 피로 세운 교회와 이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교회가 사랑과 희망의 선교로 이어지는 뜻을 담았다고 교구 측은 전했다.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들머리에 설치될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시비’ (제공: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들머리에 설치될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시비’ (제공: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구대교구에서는 6일 오전 11시 대구 성모당에서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같은 날 오후 3시 경북 군위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에서 장신호 주교 주례로 각각 미사를 거행한다.

김 추기경을 기억하는 문화행사도 마련됐다. 김 추기경의 생애를 담은 연극 ‘추기경 김수환’이 서울과 대구에서 공연되며 ‘탄생 100주년 기념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도 오는 7월 13일부터 열릴 예정이다.

가톨릭평신도단체인 ‘한국평협’은 김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복 시성을 위한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설립을 준비 중이다. 시복은 가톨릭교회에서 성성(聖性)이나 순교로 인해 이름 높은 자에게 복자(福者)라는 칭호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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