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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家庭) - 이 상
오피니언 투고·기고

[마음이 머무는 詩] 가정(家庭) - 이 상

가정(家庭) 

이 상(1910 ~ 1937)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에더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이(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시평]

이상(李箱)은 난해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폐결핵으로 황해도 배천(白川) 온천에 요양을 갔다가 돌아온 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차려 경영하면서 이태준(李泰俊)·박태원(朴泰遠)·김기림(金起林) 등을 만나며 문단 교우가 시작됐다. 특히 ‘조선중앙일보’에 난해시 ‘오감도(烏瞰圖)’ 연작시를 발표하며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후 같은 연작시인 ‘역단(易斷)’ 다섯 편을 발표한다. 위의 시 ‘가정’은 이 다섯 편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작품 ‘가정’은 이상의 작품 치고는 다소 쉬운 시이다.

집에 들어가려고 문을 아무리 잡아 다녀도, 문이 안 열리는 것은 안에 생활이 모자라는 까닭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그런가 하면, 화자는 자신의 문패 앞에서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라고 되뇐다. 지붕에 서리가 내리고 뾰족한 데는 침(鍼)처럼 월광이 묻어나고, 수명(壽命)을 헐어서 전당(典當)을 잡히는, 그래서 문(門)을 열려고 해도 안 열리고, 또 안 열리는 문(門)을 열려고 하는, 화자의 무던히 애 쓰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집으로, 곧 가정으로 들어가는 문이 안 열린다는 것은 바로 그 만큼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극심한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한 가장으로서, 한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이 이 시에는 매우 은유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연작시의 제목인 ‘역단(易斷)’도 ‘오감도(烏瞰圖)’와 같이 이상이 만든 조어(造語)이다. ‘새가 내려다보듯이 입체적으로 그린 그림이 조감도(鳥瞰圖)’라면, ‘까마귀가 내려다보는 풍경인 오감도(烏瞰圖)’는 왠지 어둡고 으스스 하다. ‘역단(易斷)’이 조어이기 때문에 정확한 뜻은 알 수가 없지만, 연구자들의 추정과도 같이 ‘운명을 거역하다’의 의미로 생각된다. ‘역(易)’이 명사로 쓰일 때에는 ‘주역(周易)’의 뜻을 지닌다. 주역의 괘를 이용해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占卜)의 의미가 ‘역(易)’에 담겨져 있다. 따라서 ‘끊다’ ‘결단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단(斷)’과 만나면서 ‘역단’은 ‘운명을 끊어버린다’ ‘운명에 대한 거역’ 등으로 그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너무나 힘든 세상사로 가정조차도 건사하기 힘든, 주어진 운명에 거역하고자 하는 화자의 심정이 그대로 담긴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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