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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사 - 박송이
오피니언 투고·기고

[마음이 머무는 詩] 겨울 이사 - 박송이

겨울 이사

박송이

 

 송아지가 죽은 날 남편은 축사 뒷산에 올라 땅을 팠습니다 한 줌씩 구덩이가 열렸습니다 긴 혓바닥으로 새끼를 닦고 닦은 어미 소를 뒤로하고 볏짚에 싸인 입과 귀와 몸뚱이를 천천히 구덩이에 묻어 주었습니다 밤나무 감나무 쑥부쟁이 복숭아나무 미나리 씀바귀 들깨풀 냉이꽃 개미들 곁으로 송아지가 이사를 갔습니다

 

 

 

[시평]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송아지가 그만 죽은 모양이다. 어미 소는 죽어가는 송아지를 혓바닥으로 닦고 닦으며 회생하기를 기원했다. 어미의 마음을 모두 담아 어린 송아지가 회생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원하고 또 기원했겠는가.

그러나 어린 송아지는 그만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마음이 무거워진 사람들은 축사 뒷산에 올라가 죽은 송아지를 묻으려고 구덩이를 팠다. 송아지의 입과 귀, 그리고 몸뚱이를 볏짚으로 싸서, 볏짚의 수의를 입혀서.

땅을 파니 한 줌 구덩이가 열렸다. 볏짚 수의를 입힌 송아지를 그 열린 구덩이 안에 넣었다. 그리고 흙을 덮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모두 죽은 듯하지만, 돌아오는 봄에는 밤나무도, 감나무도, 복숭아나무도 뿌리를 땅속 더 깊이 뻗고는 잎들을 틔우리라. 그리곤 쑥부쟁이, 미나리, 씀바귀, 들깨풀, 냉이꽃 등이 흙을 들치고 가만가만 피어나리라. 오물오물 개미들도 바쁘게 다니며 봄살이 준비를 하리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 저 아득한 자연, 그 속으로, 이 겨울 이사를 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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